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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ITRV

[19평거실]


우연히 필자가 다니는 회사가 카페를 운영하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운영하자’라는, 언제나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 마인드를 장착하고서 각 팀의 능력자들을 십분 모아 (사실 직원수가 몇 안된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해 7월의 일이다.

하루에도 몇 개의 카페들이 뜨고 지는 살인적인 연남동 카페거리 한복판에, 어떤 카페를 만들어야 할까?

라는 물음을 시작으로 지금의 19평거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 복잡했던 그러나 너무나 행복했었던 그간의 과정을 지금부터 소개한다.


*이번화는 필자가 디자인한 카페로, 제 공간을 제가 리뷰한다는 것이 매우 쑥스러워서 일기의 형태로 대신합니다.




[어떤 카페를 만들까]



자. 우리회사의 어벤저스들이 다 모였으니 이야기 해보자. 어떤 까페를 만들까?


저마다의 생각들이 오고 갔다. 힙한, 채광 좋은, 잘생긴 바리스타가 있는, 코인노래방을 겸하는(?) 등 많은 의견들이 나왔다. 시작부터 난해했다. 하지만 무언가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고, 그래서 자연스레 연남동의 ‘남의 카페’들에 집중했다.

<멋스러운 연남의 카페들>

예쁜 카페들, 참 많았다. 마치 자기만의 매력을 뽐내는 꽃들이 모여있는 작은 식물원과 같은 느낌이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쁜 꽃 옆에 예쁜 꽃 하나를 더 만드는게 의미가 있을까? 꽃이 되기보다 차라리 쉴 수 있는 벤치가 되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걸어오지 않을까?

해서 언제라도 사람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내집 같은 거실을 컨셉으로 잡았다.


자. 그럼 이 공간에는 누가 올까?


연트럴파크 초입에서 만나기로 한 선남선녀 커플들, 혹은 어젯밤 통화를 3시간이나 하고서 중요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여대생들, 아니면 관광책자 한 면에 ‘Hongdae’라는 큼지막한 단어만 보고 온 외국인 관광객들 등 다양한 타겟들을 떠올렸다. (실제로 우리의 예상은 많은 부분 일치했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묵직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공간은, 연남동 원주민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고.


더 정확히는 연남동 어느 원룸 건물에 살고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는 거실이 없다. 5-6평 남짓한 원룸에서, 혹은 그보다 더 작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편히 쉴 수 있는 곳. 그래서 지인들에게,


“내가 사는 집은 이 건물 302호랑 요 앞 19평거실까지야”

라고 자랑하면 왠지 기분 좋을 것 같았다. 자칫 간과하기 쉬운 동네주민도 소중한 고객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의미있는 대화였다.



19평거실은, 이렇게 동네와 사람에 대한 고민 그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떻게 만들까?]



자. 그럼 거실이라는 추상적인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 할까?


또 다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진짜 거실처럼 장판을 깔죠. 안마의자기는 꼭 넣어주세요. TV도 있나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허나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바램에는 모두 동의했다.

그래. 편안한 공간. 오래 머물러도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주는 공간. 이 것이 어쩌면 우리 공간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편안함을 어떻게 디자인 해야할까?


1st. 자연의 재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연적인 요소였다. 나무들 사이를 거닐 때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 흙을 밟았을 때의 폭신함, 아무 걱정이나 잡념없이 바라보게 되는 겨울바다 등 이러한 자연적인 무(無)의 것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식물원이나 수영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을 그대로 가지고 오기 보다는, 자연을 연상시키는 현대의 소재들을 사용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타일을 쓰더라도 인위적으로 조색한 타일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주는 타일을 쓰는 등의 식이다. 마치 흙을 두부처럼 반듯하게 자른 듯한 자연적인 타일이 필요했다.

<발품을 팔며 직접 공수한 타일과 자갈>


둘째로 합판이다.

이 미송합판은 보통 벽면의 기본 바탕재로 쓰이는데, 대게 이것 위에 다른 마감재를 붙이거나 칠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합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것만이 주는 자연적인 느낌이 분명히 있다.

바로 ‘결’이다.

나무가 가진 오돌토돌한 texture, 군데군데 있는 옹이의 단면은 인위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자연만의 질감이다. 해서 공간의 톤에 맞게 색감만 달리하고 텍스트는 최대한 살려서 사용 해 보기로 했다.

<색을 달리하여 만들어본 샘플들>


샛째로 식물이다. 자연 느낌을 내는 가장 자연의 것은 단연 식물이 아닐까. 다만 너무 과하지 않게 공간에서 가장 포인트가 되는 1층 입구 쪽에 식물을 배치했다.

<식물과 플랜트박스>


화분의 형태가 아닌, 틀을 짜고서 흙을 넣고 살아있는 식물을 심는 일은 매우 섬세한 기술을 필요로 했다. 자칫하면 나무들이 금방 죽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이 작업은 전문적인 조경 업체, ‘마초의 사춘기’와 함께했다.

결과적으로 그들과의 협업은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 (작품은 조금 후에 보자)



이렇듯 자칫 차가울 수 있는 콘크리트 건물을, 자연을 연상시키는 재료들로 희석시켜 편안한 공간으로 다시 구워냈다.



2nd. 손님과 직원 모두가 만족하는 평면



다음으로 공간을 만들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것, 바로 설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앞서 말한 디자인 or 마감재가 visual에 관한 내용이라면, 설계는 실질적인 운영에 관한 것이다. 카운터는 어디에 놓을 지, 손님이 지나다니는 동선은 어떻게 구성해야 편할지, 그 폭은 몇 CM가 적당할 지 등 직원과 손님 모두 편하고 만족스럽게 계획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참고로 19평거실은 1,2층이 내부계단으로 연결되어 있고, 합쳐서 45평 정도 되는 공간이다.


<1F floor plan>


1층의 계획부터 들여다보자.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카운터의 위치이다. 거실에 들어왔을 때 가족 혹은 반려견이 따듯하게 반겨주면 하루의 고단함이 눈 녹듯 녹듯이, 카페의 문을 열었을 때 직원들이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손님을 맞이 해 주면 왠지 그들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또한 좌석을 양 옆으로 나누면 서로의 독립성을 어느정도 지켜줄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해서, 작은 공간이지만 과감하게 카운터를 중앙에 구성했다.



<2F floor plan>


2층은 1층보다는 더 넒은 거실을 연상하게 한다. View가 좋은 창가를 따라서 hall을 구성하고, 운영측 요청에 따라 미팅룸과 창고를 별도로 구성 해 주었다.


사실 2층은 대관 형태로도 운영할 계획이 있었다. 해서 평상시에는 카페로, 또 대관 시에는 그에 맞는 용도(요가, 필라테스, 클래스 등)에 따라 유연하게 탈바꿈 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또한 바닥 난방을 설치 해 주어서 한겨울에도 다양한 실내 활동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다양한 대관활동 예시>



이렇듯 운영적인 니즈를 자연스럽게 녹이면서 동시에 손님이 편하게 쉬다 갈 수 있는 탄탄한 공간을 구성했다. 하지만 삽을 뜨기 전에 해야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그래픽이다.



[로고와 굿즈]



필자는 그래픽 작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유는 공간은 오프라인에 한정되어 있지만, 그래픽과 로고는 SNS, 블로그 등 온라인공간을 훨훨 날아다니며 매장보다 한발 더 빠르게 사람들과 만나기 때문이다. 카페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공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그래픽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일은 카페의 로고를 만드는 것이었다. 공간을 담백하게 담아내기 위해 많은 고민과 수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몇 개의 안 중에서, 우리는 공간과 얼마나 닮아있는 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해서 거실을 대표하는 가구와, 자연식물과, 공간의 톤이 적절하게 배합된 아래의 안을 19평거실의 얼굴로 정했다.

<19평거실의 로고. designed by @hanabag0774>



이렇게 완성한 로고는 입구에서 손님에게 가장 처음 인사를 건네는 공간의 얼굴이 되었다.

<입구에 자리잡은 19평거실 사인>




[이제 짓자!]



자.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임대료가 만만치 않다. 대표님 안색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것 같으니 빨리 삽을 뜨자.

<삽 뜨기 전의 19평 거실>


공사 전의 모습이다. 운이 좋게도 19평거실은 갓 지어진 신축건물의 1,2층에 입주하게 되었고, 건물의 콘크리트는 다른 건물과는 달리 색감이 따듯했다. 왠지 계획한 디자인과 잘 어울릴 것만 같았다. 여러모로 운이 좋다. 이제, 공사를 시작하자!


첫번 째 작업은 ① 먹줄을 튀기는 일이다.

먹. 독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 검은 액체, 맞다. 이 작업은 도면에 맞게 공간에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길거리의 화가가 초상화를 그릴 때 얼굴의 눈,코,입 윤곽을 그리듯이, 공간을 만들 때에도 먼저 전체 윤곽이 필요하다. 그래서 먹을 이용해 공간에 스케치를 한다. (실제로 봐도 재미있다.)

<각 위치를 먹줄로 튀긴 모습>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② 설비공사이다. ‘설비’라고 하면 매우 전문적이고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이 나오고 빠지는 곳, 콘센트가 필요한 자리를 정하고 미리 수도나 전선을 빼 놓는 일이다. 단, 한번 해 놓으면 수정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꼼꼼하게 확인해야한다.

<각자의 위치에 미리 빼놓은 배수/전선>



다음은 ③ 금속 공사다. 이 공정은 공간의 뼈대를 만드는 작업이다. 사람으로 치면 척추, 다리, 등 서 있기 위해서 필요한 뼈를 만드는 작업으로 이를 전후로 공간은 확연히 달라진다.

<공간의 뼈대를 세우는 금속공사>



뼈를 만들었으니, 이제 ④ 살을 붙이자. 잘 만들어진 구조틀 위에, 발품을 팔아 찾아낸 타일을 붙인다. 어떻게? 이렇게..!


<한장 한장 타일을 깔아 봅시다!>



마지막으로 공간을 밝히는 ⑤ 조명과 가구, 집기들을 세팅하고 나면 공간이 완성된다.


EBS의 밥아저씨처럼 참 쉽고 간단하게 이야기했으나, 글에는 담지 않은 문제들도 참 많았다. 모두 말하면 오늘 리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19평거실을 함께 만나보자.



가게의 문을 열면 마주치는 모습이다. 문 앞에 자갈을 깐 이유는, 매일 아스팔트 거리를 걸었던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자갈을 밟게 하여 19평의 자연 속으로 들어왔음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공간의 오른쪽에는 단을 구성하고 그 위에 편안한 소파를 배치하였다. 테이블을 놓아 좌석수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기는 편히 쉬다가는 거실이니까.


반대쪽 바 테이블 자리이다. 창 밖에는 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눈 오는 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 꽤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밖을 바라보게끔 배치했다.

유리벽 한 켠에는 연남동 거리의 모습을 담아 두었는데, 19평의 공간에서 벗어나 동네로 그 의미를 확장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연남동 주민들이 사진을 보았을 때 반가움에 한마디 더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연남동의 마실 공간이 되고 싶었다.


입구에 떡 하니 자리잡은 우리의 식물들. 앞서 이야기한 조경업체 ‘마초의 사춘기’ 와 함께 만든 작품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간혹 식물원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공간의 중심을 탄탄하게 잡아주는, 19평거실의 뿌리이다. (*저 협재해변같은 테이블석이 19평거실의 포토존입니다.)



그럼 이제, 원형계단을 돌고돌아 2층으로 함께 가보자.



1층과는 또 다른 모습의 2층이다. 앞서 말한 합판을 여기, 2층 바닥에 사용하여 컨셉을 이어갔고, 천정의 캐노피도 순도 100%의 마천이다. 1층이 외국의 거실이라면, 2층은 대청 마루가 깔려 있는 듯한 한국스러운 거실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한 켠에 자리잡은 소모임 공간이다.

2층은 대관의 목적 때문에 공간을 나누지 않고 크게 구성했는데, 이 공간 만큼은 하나의 덩어리로 잡아주면 왠지 가벼운 공간의 중심이 잡힐 것 같았다. 해서 유리로 공간을 나누되, 살이 얇은 블라인드를 설치해서 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독립된 이중적인 느낌으로 디자인했다.

그 밖의 빛이 만든 풍경들.



[오픈 후, 습관들]



시간을 내어 찾게 된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아마도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19평 거실을 오픈하고 난 뒤에도 종종 카페를 가게 된다. 여느 사람들처럼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분명 며칠 전까지는 실리콘 냄새, 먼지 가루,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했던 공사판이었는데 지금 내 눈 앞의 모습들은 너무나 평온하다.


그 속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너무 듣기 좋다. 누군가는 이 곳에서 친구를 만나 마음 편히 수다를 떨기도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가슴 설레는 첫 소개팅의 장소일 수 있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르게 소비하고 다르게 기억 될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 들어 그들의 추억을 디자인 한다는 것은, 매우 축복된 일이다.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평거실을 매일 검색한다.


정말 매일 검색한다.

눈뜨고 한번, 점심 때 한번, 자기 전에 한번. 그리고 모든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다. 이유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 지가 매우 궁금하기 때문이다. 반응도 매우 다양한데, 그 중에서도 ‘편안하다. 내 집같다. 거실같다. 아늑하다’ 등의 글을 만나면 매우 기분이 좋아진다. 그간의 고생을 알아주는 것만 같아서, 참 많이 감사하다.

<인친님의 글, @cafe_in_full>


그러나 항상 좋은 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을 더 강조하고자 사용한 자갈이나 원형계단 등 기능상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글들도 있는데, 한치의 거짓없이 모두 감사하다. 이러한 쓴 소리들을 보완해 나가면 나중에는 더욱 탄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에게는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소중하다.


그 밖에도 의도한 것과 달리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1층에 더 많은 힘을 주었지만 2층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에 놀라웠다.


내 의도대로 만든 공간이지만 각기 다르게 느끼는 것을 보면서, 꼭 내가 생각한 기준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야기 해 주는 것 같다. 그러니, 항상 겸손하게, 다양하게 생각해야겠다.



마지막으로, 19평거실을 꾹꾹 눌러 담은 글로써 리뷰를 마친다.



“19평의 자연에서 우리는 ‘쉼’을 통해 일상의 행복을 만난다.

평범한 일상 속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보통의 사람들을 위해,

19평거실은 내 집 같은 편안함으로 여유로운 한잔의 커피를 내려준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19평거실이었습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13-92

영업시간: 매일 11:00AM - 22:00PM



[아래의 글들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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